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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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4-10-17 22:08
***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 요4:19-24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4:19-24, 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여러분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입니다. 이는 신구약성경 전체에서 증거 하시는 말씀에서, 그리고 기독교 전 역사를 통하여 증명된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50:5절에서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고 하셨으며, 본문23절에서는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표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우상이 들끓던 곳이었습니다. 비사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도 우상을 만들어 팔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우상의 도시에서 불러내신 것입니다. 창세기18:19절입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간 살던 애굽에서 떠나야 했던 이유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우상숭배 환경과 고된 노예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이방 나라에서의 긴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조차도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애굽기8:1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른 예배를 통하여 신앙이 성장하며, 인생의 모든 길 또한 예배로 시작됩니다. 성경에서 형통하고 잘 된 사람들을 찾아보십시오. 똑 같은 특징이 있는데, 한결같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먼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했습니다. 즉 예배했다는 뜻입니다. 형통한 꿈의 사람 요셉도 항상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반면에 더 좋은 조건을 차지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어디를 찾아보아도 ‘제단을 쌓았다거나 하나님을 찾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는 오로지 세상적인 좋은 조건만을 찾아다녔습니다. 그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며, 요셉은 민족을 구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롯은 살던 소돔성과 고모라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에, 자신의 가정도 풍비박산이 되는 불행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이렇게 사람의 생애를 바꾸어 놓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좋으냐? 나쁘냐? 신앙생활을 잘 하는지 못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예배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모든 일이 형통하기를 원한다면 바른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바른 예배를 하는 사람을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바른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진정한 행복의 기초가 되는 바른 예배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봅시다.
1.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최선으로 예배를 준비하십시오.
예배를 준비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준비가 없이는 진정으로 예배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엄청난 준비를 해야만 했습니다. 제물을 준비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하며, 의복과 외모를 단정하게 해야 했습니다. 창세기35장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20년 전에 하나님께 단을 쌓겠다고 약속했던 야곱에게 그 약속을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온 가족에게 예배를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2-3절을 봅시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바른 예배를 배웠습니다. 부모님은 행동으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토요일이면 옷을 깨끗하게 빨아서 다림질을 해 둡니다. 값지고 화려한 옷이 아니라 깨끗하게 준비된 옷입니다. 헌금도 깨끗한 돈으로 미리 준비해서 성경책 사이에 끼워둡니다. 예배당이 깨끗한지 손봐야 할 곳은 없는지도 미리 봅니다. 주일이면 예배시간보다 한 시간은 미리 가서 예배당을 이리저리 다시 돌아보고, 찬송가를 찾아두고, 성경말씀을 미리 찾아서 읽고 책갈피를 끼워둡니다. 그리고는 예배 때까지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로 준비합니다. 저는 목사인 지금도 변함없이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토요일에 집사님의 아들인 친구랑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왔는데 문을 열어주지를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엄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지금 당장 그 집사님 집에 가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친구랑 화해하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잘못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항변했지만, 아버지는 잘잘못이 아니라 단지 싸운 것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던지 엉엉 울면서 집사님 집에까지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이런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마태복음5:23-24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내적인 준비입니다. 즉 하나님과 주파수를 맞추는 작업입니다. 하나님과의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어느 해운 회사에서 무선사를 모집했습니다. 1차 필기고사에 합격한 20여 명이 2차 시험인 면접을 하기 위하여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0여 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도 없이, 스피커에서는 감미로운 음악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청년이 아무 소리 없이 일어나더니 무턱대고 접견실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대기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의아해 하고 있었습니다. 몇 분이 지난 후, 좀 전의 그 청년이 싱글벙글하면서 나왔습니다. 대기자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나도 여러분들처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음악 소리와 함께 모리스부호로 ‘이 소리를 듣는 사람은 즉시 접견실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듣고는 들어가서 합격했다.”
고 했습니다.
이처럼 준비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함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준비된 다섯 처녀만이 혼인예식에 들어가는 은혜를 입었으며, 디모데후서2:20-21절에서는 준비된 사람이 쓰임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예배를 준비하는 것은 우리 삶에 행복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2.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최상의 예배를 하십시오.
오늘 본문말씀에서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신령’이란 ‘성령으로’라는 의미이며, ‘진정’이란 ‘진리 안에서’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른 예배는 진리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예배해야 합니다. 더 이상 잘 할 수 없을 만큼 최상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찬송을 할 때는 가사를 생각하면서 영을 담고 마음을 담아서 감격으로 노래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4:15절에서는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 했으며, 에베소서5:19절에서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했고, 골로새서3:16절에서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빠진 찬양은 하나님께서도 받지 않으시는 지절거림일 뿐입니다.
(주보, 생활의 열매에 실린 글/ 인터넷에서 퍼온 글)
예배시간에 딴청을 부리는 사람들의 열 가지 유형.
1. 설교시간에 멀거니 강단을 응시하는 멀대파(눈은 목사님, 생각은 멀리 출장 중) / 2. 주보에 밑줄 긋고 교정까지 보는 꼼꼼파. / 3. 졸면서 끄덕끄덕 콤마를 찍는 아멘파 / 4.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는 안절부절파 / 5. 옆 사람과 글로 대화하는 청각장애파 / 6. 예배 후에 있을 회의만을 생각하는 회의 염려파 / 7. 설교시간에만 성경 읽기로 시간 때우는 나홀로파 / 8. 찬송 부를 때 입만 벙긋대는 붕어파 / 9. 기도시간의 틈을 노려 묵상(?)에 잠기는 기회주의파 / 10. 누가 왔나, 안 왔나 두리번거리며 인원 체크하는 경비파
이런 예배라면 정말 다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할 때는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 잘한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아는 분은 오직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2:10절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게 하십니다. 로마서8:26,27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는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기도에 동참할 때는 아멘으로 화답하십시오. 왜냐하면 아멘으로 화답함으로서 내 기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이 선포될 때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4:26절에서 예수님께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마음으로라도 ‘이 말씀은 꼭 ooo집사에게 하는 말이야.’라고 하지 마십시오. 모든 말씀은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 말씀대로 생활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이처럼 온 마음과 뜻을 다하여 최상의 예배를 할 때에 우리 삶의 행복의 자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차게 됩니다.
3.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매일의 삶이 예배가 되게 하십시오.
본문20절에서 수가성의 우물가에 있던 여인은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산’이란, 그리심 산을 말하는데, 사마리아인들은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성전(스룹바벨 성전)을 재건할 때에 쫓겨났습니다. 혼혈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 성전을 짓고 그곳에서 예배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장소가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자세가 문제가 된다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매일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송하는 예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매일의 삶이 예배가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삶의 주인이 되시고, 모든 삶의 과정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시편37:5절에서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의 길을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곧 예배입니다. 예배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삶을 드리고 헌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기초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사회는 생산적인 기초산업이 무너지고 소비성향의 향락적인 산업만 무성하게 번성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인기 없는 기초과학도 사람들의 외면을 당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14일자 신문에서는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이 지난해에 비하여 11단계나 추락했다고 합니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인 예배가 소외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원하신다면 늦기 전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예배로 회복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는 기쁨과 영광이 되며, 성도들의 가정이, 직장이, 사업장이, 학교가 성도들로 인하여 행복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4:19-24, 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여러분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입니다. 이는 신구약성경 전체에서 증거 하시는 말씀에서, 그리고 기독교 전 역사를 통하여 증명된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50:5절에서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고 하셨으며, 본문23절에서는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표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우상이 들끓던 곳이었습니다. 비사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도 우상을 만들어 팔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우상의 도시에서 불러내신 것입니다. 창세기18:19절입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간 살던 애굽에서 떠나야 했던 이유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우상숭배 환경과 고된 노예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이방 나라에서의 긴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조차도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애굽기8:1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른 예배를 통하여 신앙이 성장하며, 인생의 모든 길 또한 예배로 시작됩니다. 성경에서 형통하고 잘 된 사람들을 찾아보십시오. 똑 같은 특징이 있는데, 한결같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먼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했습니다. 즉 예배했다는 뜻입니다. 형통한 꿈의 사람 요셉도 항상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반면에 더 좋은 조건을 차지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어디를 찾아보아도 ‘제단을 쌓았다거나 하나님을 찾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는 오로지 세상적인 좋은 조건만을 찾아다녔습니다. 그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며, 요셉은 민족을 구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롯은 살던 소돔성과 고모라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에, 자신의 가정도 풍비박산이 되는 불행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이렇게 사람의 생애를 바꾸어 놓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좋으냐? 나쁘냐? 신앙생활을 잘 하는지 못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예배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모든 일이 형통하기를 원한다면 바른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바른 예배를 하는 사람을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바른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진정한 행복의 기초가 되는 바른 예배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봅시다.
1.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최선으로 예배를 준비하십시오.
예배를 준비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준비가 없이는 진정으로 예배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하여 엄청난 준비를 해야만 했습니다. 제물을 준비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하며, 의복과 외모를 단정하게 해야 했습니다. 창세기35장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20년 전에 하나님께 단을 쌓겠다고 약속했던 야곱에게 그 약속을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온 가족에게 예배를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2-3절을 봅시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바른 예배를 배웠습니다. 부모님은 행동으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토요일이면 옷을 깨끗하게 빨아서 다림질을 해 둡니다. 값지고 화려한 옷이 아니라 깨끗하게 준비된 옷입니다. 헌금도 깨끗한 돈으로 미리 준비해서 성경책 사이에 끼워둡니다. 예배당이 깨끗한지 손봐야 할 곳은 없는지도 미리 봅니다. 주일이면 예배시간보다 한 시간은 미리 가서 예배당을 이리저리 다시 돌아보고, 찬송가를 찾아두고, 성경말씀을 미리 찾아서 읽고 책갈피를 끼워둡니다. 그리고는 예배 때까지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로 준비합니다. 저는 목사인 지금도 변함없이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토요일에 집사님의 아들인 친구랑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왔는데 문을 열어주지를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엄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지금 당장 그 집사님 집에 가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친구랑 화해하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잘못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항변했지만, 아버지는 잘잘못이 아니라 단지 싸운 것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던지 엉엉 울면서 집사님 집에까지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이런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마태복음5:23-24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내적인 준비입니다. 즉 하나님과 주파수를 맞추는 작업입니다. 하나님과의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어느 해운 회사에서 무선사를 모집했습니다. 1차 필기고사에 합격한 20여 명이 2차 시험인 면접을 하기 위하여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0여 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도 없이, 스피커에서는 감미로운 음악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청년이 아무 소리 없이 일어나더니 무턱대고 접견실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대기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의아해 하고 있었습니다. 몇 분이 지난 후, 좀 전의 그 청년이 싱글벙글하면서 나왔습니다. 대기자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나도 여러분들처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음악 소리와 함께 모리스부호로 ‘이 소리를 듣는 사람은 즉시 접견실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듣고는 들어가서 합격했다.”
고 했습니다.
이처럼 준비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함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준비된 다섯 처녀만이 혼인예식에 들어가는 은혜를 입었으며, 디모데후서2:20-21절에서는 준비된 사람이 쓰임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예배를 준비하는 것은 우리 삶에 행복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2.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최상의 예배를 하십시오.
오늘 본문말씀에서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신령’이란 ‘성령으로’라는 의미이며, ‘진정’이란 ‘진리 안에서’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른 예배는 진리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예배해야 합니다. 더 이상 잘 할 수 없을 만큼 최상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찬송을 할 때는 가사를 생각하면서 영을 담고 마음을 담아서 감격으로 노래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4:15절에서는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 했으며, 에베소서5:19절에서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했고, 골로새서3:16절에서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빠진 찬양은 하나님께서도 받지 않으시는 지절거림일 뿐입니다.
(주보, 생활의 열매에 실린 글/ 인터넷에서 퍼온 글)
예배시간에 딴청을 부리는 사람들의 열 가지 유형.
1. 설교시간에 멀거니 강단을 응시하는 멀대파(눈은 목사님, 생각은 멀리 출장 중) / 2. 주보에 밑줄 긋고 교정까지 보는 꼼꼼파. / 3. 졸면서 끄덕끄덕 콤마를 찍는 아멘파 / 4.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는 안절부절파 / 5. 옆 사람과 글로 대화하는 청각장애파 / 6. 예배 후에 있을 회의만을 생각하는 회의 염려파 / 7. 설교시간에만 성경 읽기로 시간 때우는 나홀로파 / 8. 찬송 부를 때 입만 벙긋대는 붕어파 / 9. 기도시간의 틈을 노려 묵상(?)에 잠기는 기회주의파 / 10. 누가 왔나, 안 왔나 두리번거리며 인원 체크하는 경비파
이런 예배라면 정말 다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할 때는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 잘한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아는 분은 오직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2:10절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게 하십니다. 로마서8:26,27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는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기도에 동참할 때는 아멘으로 화답하십시오. 왜냐하면 아멘으로 화답함으로서 내 기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이 선포될 때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4:26절에서 예수님께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마음으로라도 ‘이 말씀은 꼭 ooo집사에게 하는 말이야.’라고 하지 마십시오. 모든 말씀은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 말씀대로 생활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이처럼 온 마음과 뜻을 다하여 최상의 예배를 할 때에 우리 삶의 행복의 자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차게 됩니다.
3.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매일의 삶이 예배가 되게 하십시오.
본문20절에서 수가성의 우물가에 있던 여인은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산’이란, 그리심 산을 말하는데, 사마리아인들은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성전(스룹바벨 성전)을 재건할 때에 쫓겨났습니다. 혼혈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 성전을 짓고 그곳에서 예배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장소가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자세가 문제가 된다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매일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송하는 예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매일의 삶이 예배가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삶의 주인이 되시고, 모든 삶의 과정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시편37:5절에서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의 길을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곧 예배입니다. 예배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삶을 드리고 헌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기초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사회는 생산적인 기초산업이 무너지고 소비성향의 향락적인 산업만 무성하게 번성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인기 없는 기초과학도 사람들의 외면을 당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14일자 신문에서는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이 지난해에 비하여 11단계나 추락했다고 합니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인 예배가 소외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원하신다면 늦기 전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예배로 회복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는 기쁨과 영광이 되며, 성도들의 가정이, 직장이, 사업장이, 학교가 성도들로 인하여 행복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