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형통하지 않을 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8,654회
작성일
2004-10-12 22:03
* 일이 형통하지 않을 때 / 막5:21-24. 35-43
***들어가는 말
전도서7:14절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사람이 살다보면, 일이 뜻대로 잘 풀릴 때가 있는가 하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어지듯 일이 풀리지 않고 어려움이 닥칠 때도 있습니다. 늘 잘되기만 하는 사람도 없고, 늘 어려움 속에서만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 상반되는 두 환경은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 어떻게 합니까? 최근 미국에서는 하루에 수면제가 600만개 이상이 소비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 저런 일로 고민하다가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를 먹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어디 미국에만 그렇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요즈음 들어 부쩍 늘어난 현상이 정신병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다변화된 사회에서 적응하는 문제가 쉽지 않습니다. 거기에 경제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 자녀들의 문제, 자기 성취의 문제, 인간관계 등. 갈등의 요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성 질환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로부터 벗어나 보려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 시도를 합니다. 술과 담배로, 마약으로, 레저 스포츠로, 어떤 일에 깊이 빠짐으로서 해결해 보려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문제를 불러오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일이 형통하지 못하고, 시련이 오고 어려운 환경이 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도서에서는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본문 말씀에는 어려움에 처한 한 가정이 나옵니다. 그 가정은 ‘회당장’의 가정입니다. 회당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봅시다. 하나님의 징계로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게 되고, 세계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성전예배를 하지 못하게 된 유대인이 모여서 작은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이것이 회당입니다. 회당에서는 예배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생활 전반을 관리하기도 했습니다. 회당장은 회당의 우두머리로서 집회를 인도하고, 회당 건물의 유지 관리를 책임지는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회당장의 가정에 우환이 닥쳤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병에 들어 죽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다급한 상황을 만난 회당장과 이 사건 도중에 느닷없이 끼어든 또 하나의 불행한 혈루병 여인의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예수님께서 본문36절에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일이 형통하지 못하고 고난이 닥칠 때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취해야 할 믿음의 자세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1. 일이 형통하지 않을 때는 주님을 더욱 굳게 붙잡으십시오.
항상 주님을 붙잡아야 하지만 어려울 때, 일이 형통하지 않을 때는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 지역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 한 사람이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는 회당장으로서 ‘야이로’라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어린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발아래 엎드렸다는 것은 최대의 존경의 표현입니다. 더욱이 회당장이리는 신분으로서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예수님께 무릎 꿇고 엎드려 간청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 무리들에게 미움을 사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당장의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한 외식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이적을 믿고 있다는 것과 많은 사람 앞에서 회당장의 신분으로서 무릎을 꿇고 간청하는 일은 그의 행동이 확실한 믿음을 기초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의 진실한 믿음을 아시고 그의 소망을 들어주신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34절에서 혈루증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지어다.”라고 하셨으며, 36절에서 회당장에게도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어려움이 닥칠 때에는 주님을 더욱 굳게 붙잡으십시오. 세상에 호소하거나, 육신의 쾌락이나 어떤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거나 도피하려 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자녀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믿고 의지합시다. 이 길만이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세상적인 지위와 체면,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주님을 붙잡읍시다. 그 길이 우리가 형통하는 길입니다.
2. 일이 형통하지 않을 때는 주님의 소리만 들으십시오.
회당장이 예수님을 모시고 병든 딸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도중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이 갑자기 회당 장의 집으로 기시던 걸음을 멈추시고 두리번거리시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의아해 했습니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서 밀고 밀리는 아수라장인데, 옷에 손을 댄 사람이 한 두 명이겠습니까?
회당 장은 속이 탔습니다. 한시가 급한 판국에 예수님께서 딴전을 부리시는 것입니다. 지금 야이로의 마음에는 오로지 자신의 딸을 살리는 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일들이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머물러 서셨고, 혈루병 여인을 만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그만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회당장의 집에서 소식이 온 것입니다. 그들은 “방금 당신의 딸이 죽었는데,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이 오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회당 장은 앞이 캄캄하고, ‘이제 끝났구나.’라고 포기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에게 신앙의 위기가 온 것을 아시고,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독려했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야이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즉 그는 주님을 신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아이의 부모 외에는 그 누구도 기적의 현장에 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본문38-40절을 보십시오.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시끄럽게 떠드는 것)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하시니 저희가 비웃더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불신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세 제자와 아이의 부모만 그 기적의 현장에 들이셨습니다. 이는 불신적인 환경을 단호하게 차단시키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은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이 형통하지 못할 때, 위기가 닥쳤을 때,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와 불신을 조장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오히려 세상의 문을 닫으십시오. 주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자신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로 죽을 것임을 들었을 때, 세상의 문을 모두 닫고 그 얼굴을 벽으로 향했습니다. 이사야38:2-3절입니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라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눈물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15년을 더 살게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주님을 믿고 순종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세상의 이치를 따지지는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세상의 이치를 따져서 여러분에게 조언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은 그 권한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어려움이 닥칠 때, 고난이 겹겹이 쌓인다고 여겨질 때는 얼굴을 주님께로 향하십시오.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세상은 부정적인 시각만 더 할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 중의 10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좋은 것은 보지 않고 부정적인 것만 보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다른 열 명과 똑 같은 것을 보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보면 부정적인 것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능력이신 주님을 보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우리 하나님께 해결의 열쇠가 있습니다. 이사야45:11절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고 하신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3. 일이 형통하지 않을 때는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회당장이 예수님과 함께 가고 있는 길에도 여러 방해들이 있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한다고 모든 것이 만사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방해꾼도 있고,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시험과 시련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를 원한다면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자신의 딸이 살아날 때까지 주님을 신뢰하며 의지하며 따랐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에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인내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에 있어서 도중에 방해꾼이 생긴다 할지라도 조급하지 말고 끝까지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많은 경우, 응답이 늦어지거나 이해 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일로 인하여 포기해버리는 성도가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은 적극적으로 차지하는 자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영원한 생명은 인내로서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1:12절에서는,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하셨고, 마가복음13:13절에서는,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정리해 봅시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좋은 일, 형통한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일이 꼬이고, 어려운 문제가 불쑥 솟아오르고, 형통하지 못한 일들도 많이 생깁니다. 형통할 때야 더 없이 감사하고 기뻐할 것이지만, 형통하지 못하고 어려움이 닥칠 때는 더욱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할 때입니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주님의 말씀과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그리고 내 소망이 이룰 때까지 끝까지 인내하며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함도 잊지 맙시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께서 이루시고, 우리가 칭찬과 영광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
***들어가는 말
전도서7:14절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사람이 살다보면, 일이 뜻대로 잘 풀릴 때가 있는가 하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어지듯 일이 풀리지 않고 어려움이 닥칠 때도 있습니다. 늘 잘되기만 하는 사람도 없고, 늘 어려움 속에서만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 상반되는 두 환경은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 어떻게 합니까? 최근 미국에서는 하루에 수면제가 600만개 이상이 소비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 저런 일로 고민하다가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를 먹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어디 미국에만 그렇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요즈음 들어 부쩍 늘어난 현상이 정신병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다변화된 사회에서 적응하는 문제가 쉽지 않습니다. 거기에 경제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 자녀들의 문제, 자기 성취의 문제, 인간관계 등. 갈등의 요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성 질환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로부터 벗어나 보려고 사람들은 여러 가지 시도를 합니다. 술과 담배로, 마약으로, 레저 스포츠로, 어떤 일에 깊이 빠짐으로서 해결해 보려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문제를 불러오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일이 형통하지 못하고, 시련이 오고 어려운 환경이 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도서에서는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본문 말씀에는 어려움에 처한 한 가정이 나옵니다. 그 가정은 ‘회당장’의 가정입니다. 회당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봅시다. 하나님의 징계로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게 되고, 세계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성전예배를 하지 못하게 된 유대인이 모여서 작은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이것이 회당입니다. 회당에서는 예배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생활 전반을 관리하기도 했습니다. 회당장은 회당의 우두머리로서 집회를 인도하고, 회당 건물의 유지 관리를 책임지는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회당장의 가정에 우환이 닥쳤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병에 들어 죽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다급한 상황을 만난 회당장과 이 사건 도중에 느닷없이 끼어든 또 하나의 불행한 혈루병 여인의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예수님께서 본문36절에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일이 형통하지 못하고 고난이 닥칠 때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취해야 할 믿음의 자세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1. 일이 형통하지 않을 때는 주님을 더욱 굳게 붙잡으십시오.
항상 주님을 붙잡아야 하지만 어려울 때, 일이 형통하지 않을 때는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 지역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 한 사람이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는 회당장으로서 ‘야이로’라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어린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발아래 엎드렸다는 것은 최대의 존경의 표현입니다. 더욱이 회당장이리는 신분으로서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예수님께 무릎 꿇고 엎드려 간청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 무리들에게 미움을 사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당장의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한 외식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이적을 믿고 있다는 것과 많은 사람 앞에서 회당장의 신분으로서 무릎을 꿇고 간청하는 일은 그의 행동이 확실한 믿음을 기초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의 진실한 믿음을 아시고 그의 소망을 들어주신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34절에서 혈루증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지어다.”라고 하셨으며, 36절에서 회당장에게도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어려움이 닥칠 때에는 주님을 더욱 굳게 붙잡으십시오. 세상에 호소하거나, 육신의 쾌락이나 어떤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거나 도피하려 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자녀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믿고 의지합시다. 이 길만이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세상적인 지위와 체면,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주님을 붙잡읍시다. 그 길이 우리가 형통하는 길입니다.
2. 일이 형통하지 않을 때는 주님의 소리만 들으십시오.
회당장이 예수님을 모시고 병든 딸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도중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이 갑자기 회당 장의 집으로 기시던 걸음을 멈추시고 두리번거리시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의아해 했습니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서 밀고 밀리는 아수라장인데, 옷에 손을 댄 사람이 한 두 명이겠습니까?
회당 장은 속이 탔습니다. 한시가 급한 판국에 예수님께서 딴전을 부리시는 것입니다. 지금 야이로의 마음에는 오로지 자신의 딸을 살리는 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일들이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머물러 서셨고, 혈루병 여인을 만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그만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회당장의 집에서 소식이 온 것입니다. 그들은 “방금 당신의 딸이 죽었는데,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이 오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회당 장은 앞이 캄캄하고, ‘이제 끝났구나.’라고 포기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에게 신앙의 위기가 온 것을 아시고,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독려했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야이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즉 그는 주님을 신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아이의 부모 외에는 그 누구도 기적의 현장에 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본문38-40절을 보십시오.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시끄럽게 떠드는 것)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하시니 저희가 비웃더라.”고 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불신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세 제자와 아이의 부모만 그 기적의 현장에 들이셨습니다. 이는 불신적인 환경을 단호하게 차단시키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은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이 형통하지 못할 때, 위기가 닥쳤을 때,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와 불신을 조장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오히려 세상의 문을 닫으십시오. 주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자신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로 죽을 것임을 들었을 때, 세상의 문을 모두 닫고 그 얼굴을 벽으로 향했습니다. 이사야38:2-3절입니다.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라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눈물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15년을 더 살게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주님을 믿고 순종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세상의 이치를 따지지는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세상의 이치를 따져서 여러분에게 조언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은 그 권한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어려움이 닥칠 때, 고난이 겹겹이 쌓인다고 여겨질 때는 얼굴을 주님께로 향하십시오.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세상은 부정적인 시각만 더 할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 중의 10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좋은 것은 보지 않고 부정적인 것만 보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다른 열 명과 똑 같은 것을 보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고 했습니다.
세상을 보면 부정적인 것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능력이신 주님을 보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우리 하나님께 해결의 열쇠가 있습니다. 이사야45:11절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고 하신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3. 일이 형통하지 않을 때는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회당장이 예수님과 함께 가고 있는 길에도 여러 방해들이 있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한다고 모든 것이 만사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방해꾼도 있고,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시험과 시련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를 원한다면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자신의 딸이 살아날 때까지 주님을 신뢰하며 의지하며 따랐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에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인내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에 있어서 도중에 방해꾼이 생긴다 할지라도 조급하지 말고 끝까지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가 많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많은 경우, 응답이 늦어지거나 이해 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일로 인하여 포기해버리는 성도가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은 적극적으로 차지하는 자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영원한 생명은 인내로서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1:12절에서는,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하셨고, 마가복음13:13절에서는,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정리해 봅시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좋은 일, 형통한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일이 꼬이고, 어려운 문제가 불쑥 솟아오르고, 형통하지 못한 일들도 많이 생깁니다. 형통할 때야 더 없이 감사하고 기뻐할 것이지만, 형통하지 못하고 어려움이 닥칠 때는 더욱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할 때입니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주님의 말씀과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그리고 내 소망이 이룰 때까지 끝까지 인내하며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함도 잊지 맙시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께서 이루시고, 우리가 칭찬과 영광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