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하나님 역사하심의 시작
*** 하나님 역사하심의 시작 / 역대하 20:15-23
역대하 20:15-23, “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16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만나려니와 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18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19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20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하고 21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2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23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 들어가는 말
리처드 바커의 소설 ‘갈매기의 꿈’에는 ‘조나단 리빙스턴’이라는 갈매기가 나옵니다. 이 조나단의 가장 유명한 말은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시각이 좁아질수록 생각은 자기에게 국한되고, 바로 코앞의 일에 매이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 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자기 앞의 일이나 자기 생각에 매이면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닫지 못하니 자기 생각과 뜻대로 행하게 되어, 세상의 환경에 마음을 빼앗겨 세상 염려 속에서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본문 말씀에서도 모압 연합군의 침공을 받은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신뢰하라.”라고 백성들을 격려함을 봅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와 어떻게 신뢰하는 것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의 시대적인 배경은 남 유다의 4번째 왕인 여호사밧 때입니다. 여호사밧은 35세에 왕이 되어 25년 동안 남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성경은 여호사밧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선한 왕이라고 평가합니다. 이 여호사밧 왕 때에 이웃 나라들인 모압과 암몬과 세일 사람들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남 유다를 치러왔습니다. 여호사밧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이들을 대항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달린 중대한 문제가 일어났지만, 이 일을 해결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때 여호사밧은 다른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본문 앞쪽의 12절입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며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여호사밧 왕의 기도에 하나님은 즉시 응답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본문 15-17절입니다.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여호사밧은 응답하신 하나님께 경배하고,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과 그의 선지자를 신뢰하면 형통하리라.’라고 격려하면서, 찬양대를 조직하여 군대 앞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행진하게 했습니다. 찬양대가 행진하면서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찬송을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셔서 적군들을 치셨습니다. 낙심과 두려움과 비참함이 몰려들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찬양하고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놀라운 이적의 시작이었습니다.
※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러시아에서 전해 내려오는 우화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넓은 채소밭을 가꾸던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끼 한 마리가 채소밭을 망쳐놓곤 했습니다. 참다못한 농부는 영주를 찾아가서 호소했습니다. “제발 저의 채소밭을 망치는 못된 토끼를 좀 잡아 주십시오. 그놈이 어찌나 꾀가 많고 날쌘지 올가미와 몽둥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놈은 둔갑한 마술쟁이인 것 같습니다.” “마술쟁이라니 그럴 리가 있나? 설사 그놈이 악마라고 해도 내 날쌘 사냥개들한테는 꼼짝 못 할 것이다. 내 명예를 걸고 꼭 잡아 주겠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영주는 토끼를 잡기 위해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말을 탄 신하 열 명과 사나운 사냥개 일곱 마리가 동원되었습니다. 농부는 진수성찬으로 영주 일행을 대접했습니다. 푸짐한 대접을 받은 영주 일행은 토끼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토끼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농부는 그제야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농부의 채소밭은 말들과 사냥개들에게 짓밟혀 배추 한 포기, 상추 한 움큼도 남지 않게 되었고, 울타리조차 모두 쓰러져버렸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땅을 치며 탄식했습니다. “이것이 웬 난리인가? 이 땅의 모든 토끼가 100년 동안 망쳐놓은 것보다 더 큰 피해를 이 사람들이 가져왔구나!”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라는 속담이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잘 된 많은 것들은 제쳐두고, 잘못된 작은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모든 일을 그르치는 격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멀리 보지 못하고 눈앞의 작은 것에 마음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쉽게 놓치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의 잘되거나 혹 어그러지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정작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굴의 잠언에서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7-9)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이유를 찾으셨습니까?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게 속한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2:5절에서 하나님을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 즉,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14:24절에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라고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들은 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이십니다. 즉 우리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을 아십니다. 나훔 1:7절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여호사밧 왕이 나라의 존망이 달린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신뢰했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의 진정한 마음을 아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마가복음 5:25-29절을 봅시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혈루증 여인은 세상을 의지했을 때, 돈도 건강도 모두 잃어버렸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의지했을 때, 회복되었습니다. 이 이적 이야기에서 꼭 기억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행동할 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능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예수님의 사역에서 수없이 나타났고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 삶을 주관하시며, 역사하심을 분명히 신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사밧 왕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 삶에 역사하시며, 하나님을 찾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16:9절에서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십니다.
※ 그러면, 하나님을 신뢰함을 어떻게 나타냅니까?
본문 21-22절을 봅시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이 말씀의 핵심은 ‘여호사밧 왕과 이스라엘 백성이, 선지자를 통하여 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했다.’라는 것입니다. 즉 내가 하나님을 신뢰함을 나타내는 것은, 내 생활 속에서 깨달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여 행하고,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찬양과 감사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 나타나는 삶의 반응입니다.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하나님께서 이루셨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나쁜 일, 실패, 고통스러운 일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일 전부를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먼 미래까지를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을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은 인생들을 위한 것이며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9:11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그리고 로마서 8:28절에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앞의 일만 아니라, 앞날의 모든 상황을 아시고 최선의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신뢰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행하신 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베푸시며, 놀라운 능력으로 우리 삶에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약방의 감초’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모든 한약을 달일 때 감초가 사용되기 때문에 붙여진 말입니다. 감초는 모든 약의 독성을 없애주고 72종의 광물성 약재와 1천 2백 종의 식물성 약재를 조화시켜 효능을 잘 발휘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약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약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감사’가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감사는 사람의 악한 성질을 중화시키는 역할도 하고, 염려와 근심, 걱정, 괴로움, 두려움, 고통까지도 모두 녹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감사는 하나님의 진노하심까지도 긍휼하심으로 바뀌게 합니다. 시편 50:23절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라고 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전쟁하러 나가는 군대 앞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대를 앞세워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찬양하며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감사 찬양을 시작할 때 이스라엘의 대적을 무너뜨리셨습니다. 감사에 찬양이 더해지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됩니다.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고통스럽고 눈물이 날 때도 나를 자녀로 삼으시고 살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 보십시오. 내 삶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처럼, 내 삶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이,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여호사밧 왕이 절망감과 극도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찬양으로 감사했을 때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었습니다. 지금 내게 생명 있음을 감사하며, 내가 건강함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할 수 있음을 감사합시다. 이렇게 진정 어린 감사가 하나님의 역사를 부릅니다. 우리 삶에서 진정한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고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