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내 인생의 특별한 날
*** 내 인생의 특별한 날 / 고린도후서 5:14-19
고린도후서 5:14-19,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 들어가는 말
우리가 살아가노라면 자신에게 아주 특별하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고, 특별한 날도 있고, 특별한 물건도 있습니다. 오늘 권사의 직임을 받는 두 분 집사님들은 오늘이 아주 특별한 날이겠지요? 교회의 항존직(恒存職)을 수행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아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직무를 다해야 하는 중요한 직책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일이나, 사람, 물질에 자기 나름의 중요도를 따라 순번을 매깁니다. 예컨대, 오늘 만나야 할 그룹이 두셋이 되는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이 중요도의 순번이 높은 쪽을 선택하겠지요. 아마도 오늘 행사를 위해 옷을 선택하는 것도, 특별한 날의 중요도를 따랐을 것입니다. 여성분들은 그릇이나, 음식도 특별한 날에 사용하거나 만드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절기나, 안식일,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대단히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16장에는 이스라엘의 가장 특별한 세 절기가 언급됩니다. 1-3절입니다.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을 행하라.…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키라고 하신 특별한 날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는 ‘특별하다.’라는 말을 일상화시키는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넷 좋은 글에 올라온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아내와 사별한 어느 중년의 남성이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죽은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실크 스카프 한 장을 발견했다네. 그것은 아내가 미국 여행을 하던 중에 뉴욕의 유명 매장에서 구입한 것이라네. 그런데 아주 아름답고 비싼 스카프여서 아내는 차마 쓰지 못하고 특별한 날에만 사용하려고 애지중지했던 것이었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잠시 말을 멈췄습니다. 잠시 후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절대로 소중한 것을 아껴뒀다가 특별한 날에 쓰려고 하지 말게. 네가 살아 있는 매일이 특별한 날들이야.”
그 말을 들은 친구는 그날 이후, 그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자신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바쁘게 일하다가도 일을 놓아둔 채 소설책을 한 권 꺼내 들고,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창가에 쌓인 먼지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강가의 풍경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집에서 밥을 하건 말건 억지로라도 아내를 끌고 나가 외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또 다른 친구를 만났을 때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다시 만난 그 친구는 ‘자신도 그 이야기를 들은 후에 생활이 더는 예전 같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장식장 안에 있던 아름다운 도자기 그릇이 식탁 위로 올라왔답니다. 나중에 아주 특별할 때 쓰려고 했던 것인데 그날이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아셨답니다.’ 이 글을 쓴 분은 결론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언젠가, 이런 단어는 더는 제 사전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슨 즐거운 일이 생기거나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바로 그때가 좋은 것이지요. 우리는 종종 옛 친구들과 만나려고 할 때 ‘다음에’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합니다. 매일 아침 우리가 눈뜰 때마다 오늘이 바로 ‘특별한 날이다.’라고 스스로 말해야 합니다. 매일, 매시간 모두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3:13절입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타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오늘 본문 17-19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셨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라고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중요한 날이 ‘오늘’ ‘지금’입니다. 즉 매일을 새롭게 특별한 날로 여기며, 주어진 일을 해야 합니다.
※ 본문 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봅시다.
고린도 서신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두 편의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였습니다.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가르치며, 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편지에는 각 지역의 실정에 맞는 복음을 강론하면서 ‘세속의 삶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라’라고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특히, 고린도 교회가 있는 고린도 시는 잡다한 인종과 민족인 모여 사는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적 도시였습니다. 약 20만 명의 자유민이 있었고, 40만 명이 넘는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상업 도시였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향락이 극에 달했습니다. 예를 들면, 희랍에서는 최초로 로마의 검투사 경기를 수입했고, 아프로디테(비너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미와 사랑의 여신) 신전에는 수천 명의 매춘부가 있어서 음란의 도시였습니다. 이런 고린도 시를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 방문하여 1년 6개월을 체류하면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러한 환경에 있는 고린도 교회는 당연히 신앙을 지킨다는 것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너무도 강력한 향락과 부를 추구하는 환경을 벗어나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책망하기도 하며, 위로도 하고, 하나님 나라에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지어야 한다는 상급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과 같이, 예수님을 따르는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열정을 가지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을 특별한 날로, 주어진 모든 일을 특별한 일로, 만나는 모든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말씀을 대하는 우리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의 은총을 알고, 그 안에서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 왜 매일을 특별한 날로 살아야 합니까?
본문 17-19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우리는 이 말씀처럼 새롭게 지어진 사람입니다. 이것은 변화(變化)가 아닙니다. 새로운 창조(創造)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는 것을 중생(重生, born again)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하여 이렇게 새롭게 태어난 사람은 새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4:22-24절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이 말씀의 의미를 생활에 적용하면, ‘매일을 특별한 기회로 삼으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매 순간은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와 인도하심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쉽게 풀어봅시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깊은 신앙을 가졌던 ‘윗치만 니’(지방교회 창시자로 이단시하지만, 지방교회는 그의 제자라고 자칭한 위트리스 니의 작품이다. )는 자신의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에게 결혼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여인으로부터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더는 그 여인에게 요청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에 관한 생각이 끊임없이 자신을 지배했습니다. 그는 그 여인과의 결혼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실 것이라 생각하고,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맡겼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장소에서 그 여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여인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다시 청혼했습니다. 냉정하게 거절하던 10년 전과는 달리 그 여인은 청혼을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이는 하나의 예이지만, 내 생활 속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일이 이에 속합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와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짐을 믿는 성도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주저앉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거절을 당하거나, 길이 막히거나, 환경의 제약을 받을 때는 조용히 하나님께 상황을 아뢰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만일 우격다짐으로 자기 생각대로 밀고 나간다면, 세상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충돌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전투에서 큰 성 여리고를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작은 성인 아이성 전투에서 패전했고, 하나님께 통곡하며 상황을 아뢰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 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수 7:7-9).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라고, 패전의 원인을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이 아시아 전도를 위하여 나아가다가 길이 막히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마게도냐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 바울 역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여 길을 잘못 정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멈추어서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그들에게 패전하거나, 길이 막히거나, 환경을 통한 제약의 원인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길이 막히고 환경의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으로 억지로 일을 추진하던 사울 왕은, 하나님의 진노를 샀으며 결국, 버림을 당하고 왕위를 빼앗겼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전체가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섭리는 우연(偶然)이 아니라 필연(必然)이라는 뜻입니다. 즉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우리가 당면하는 모든 일은 하나의 예외 없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매일, 매 순간, 모든 일, 모든 만남, 모든 상황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특별한 순간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든 생활을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며, 하나님의 섭리하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조물은 없습니다.
※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특별한 삶입니까?
본문 15절입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나를 살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이 특별한 삶입니다. 왜냐하면, 매 삶의 순간순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새로운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다음에’ ‘나중에’라고 미루지 말고, 지금을 마지막처럼 행동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14절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말씀의 요약입니다. 내 삶에서 화평함과 거룩함을 이루려면,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섬김과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 18-19절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매일이 내 인생의 특별한 날로 살려면, 내 생각과 내 뜻을 앞세우기 전에, 두 가지를 생각하십시오. 첫째는, ‘주님께서 이 일을 내게 행하려고 하신다면’이라는 것이며, 두 번째는 ‘나와 상대방이 서로 처지가 바뀌어 있다면’이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면, 하나님께서 뜻을 바꾸어버리시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33:55-56절입니다. “너희가 만일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힘쓰면, 하나님께서 내 길을 열어주십니다. 이제부터는 ‘나중에’ ‘다음에’라고 미루지 마십시오. 이렇게 미루면 내 인생만 더 힘들어지고, 고통만 더합니다. 오늘을, 지금 주어진 생명의 시간을 내 인생의 특별한 날로 여기시고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