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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방향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331회 작성일 2023-09-24 16:43

*** 내 마음의 방향 / 누가복음 5:33-39

 

누가복음 5:33-39,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그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함이니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변화나 개혁을 좋아하시는 편입니까? 아니면 늘 있던 그대로의 생활 즉 보수적인 편입니까? 지금의 50대 이상의 분들이 과거의 어려웠던 시절을 이야기할 때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대뜸 ‘그 시대랑 지금은 다르거든요!’라고 반박합니다. 고리타분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반하는 것 중에는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고 있는 것을 꼽습니다. 서울의 거대한 빌딩 숲에 경복궁, 숭례문 등. 옛것이 조화롭게 보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흑백 논리에 강한 우리 민족은 너무 한 방향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문제가 되어 왔습니다. 지금도 양극을 달리는 진보와 보수의 충돌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좌와 우, 개혁과 보수, 양과 음이 조화를 이루는 삶이 중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생활에도 보수와 개혁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 전체적인 이야기를 하려면, 분량이 너무 많습니다. 이 시간에는 주님께서 본문 38절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신앙의 방향을 살펴보려 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마태복음 9:14-17, 마가복음 2:18-22, 그리고 본문.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 등. 같은 관점에서 기록된 세 복음서) 모두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상대로 한 금식 논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자주 금식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물은 이유는 유대인들이 지키는 금식일 때문입니다. 이 금식일에 경건한 유대인들은 금식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대답 대신에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혼인집 손님에 대한 비유’인데 본문 33-34절입니다.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그러나 그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할 아리송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36-38절에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라는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의미는 ‘예수께서 열어놓으신 새로운 시대를 위해 새로운 마음의 자리가 필요하다.’라는 것입니다. 즉 율법을 따르던 옛 시대의 습관에 젖어서 형식적인 금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은혜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열어놓으신 새로운 복음의 시대는 옛 율법의 관습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복음으로 채우는 새 삶이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의 기계식 자동차 정비기술을 가진 사람이 컴퓨터로 제어되는 현재의 디지털식 자동차를 정비하려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아마 이해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이처럼 옛 율법 시대와 새로운 복음의 시대는 이렇게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새로운 복음을 이해하기 위하여 성령 충만한 새로운 믿음과 사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다른 두 복음서에는 기록되지 않은 의미심장한 구절이 본문에 있습니다. 39절의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옛 삶에 적응된 사람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께서 이루신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결단과 새로운 삶을 요구하지만, 선뜻 예수님의 뜻에 부응하려 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매일 새롭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새로운 신앙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이 삶의 방향은 동서남북의 방향이나, 사상적인 방향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방향입니다.

 

※ 내 마음의 방향은 지나온 길에 연연하지 않아야 합니다.

 

‘팻 로버슨’목사의 간증 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팻 목사는 예일대 법학과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버지니아주 상원의원이며, 은행 통화위원장이었습니다. 이분이 목사가 되기 전 구원의 확신을 체험한 날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퇴근 시간에‘한잔하러 가자.’라는 친구의 요청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현관문을 열고는 “여보, 나 구원받았소.” 하고 외쳤습니다. 느닷없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당신 미쳤군요.”라고 했습니다. 로버슨은 “난 미치지 않았소. 내가 오늘 구원을 받았단 말이오.” 그리고 그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무 말도 없이 찬장 문을 열고, 거기 있던 위스키병들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하나씩 마개를 열고 하수도에 쏟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뒤늦게 그 모습을 본 아내가 “당신 왜 이래요? 얼마나 비싼 것들인데!” 하면서 달려와 마지막 술병을 잡아채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까지 빼앗아 다 쏟아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팻 로버슨 목사님이 자기의 옛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의 길로 들어서던 날의 경험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길,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삶은, 버리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옛것으로 가득 찬 자리에는 새것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원한다면 옛것을 버려야 합니다. 무엇인가 가득 찬 그릇에는 다른 것을 담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담으려면 들어있던 옛것을 비워야 함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 6:24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여러분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새 삶을 시작할 때 무엇을 버렸습니까? 아니면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지나온 삶의 미련을 떨치지 못해 지금도 옛 삶을 기웃거리고 있습니까?

 

빌립보서 3:7-9상반절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 지나간 모든 삶을 해롭게 여기고 배설물로 여겨서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비워진 자기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로 채웠습니다. 오랜 자기 생활이나 습관을 버리고 바꾼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구태여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의 신분이 달라졌고, 소망하는 바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며, 세상에 낙을 두고 사는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오늘을 살지만 ‘미래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16절에서는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더 나은 본향인 미래를 보는 사람은 지금의 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현재의 삶은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36-37절입니다.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이 말씀에서 새 옷과 낡은 옷, 새 포도주와 낡은 가죽 부대를 말하는 이유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수도 없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9-10절을 봅시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 때까지 맡겨둔 것이라.” 율법 시대의 삶은 개혁 때까지 맡겨둔 임시적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의 삶은 영원한 삶을 위한 준비이며, 임시적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지나온 생활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새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지나온 삶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 내 마음의 방향을 매일 공급하시는 주님께 두어야 합니다.

 

에스겔 18:21-22절을 봅시다.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 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24절입니다.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그래서 히브리서 3:13절에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평가하시는 시점’입니다. 지나간 과거나 다가올 미래가 하니라 지금입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방법은 한꺼번에 많이 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필요한 은혜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을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마태복음 6:34절에서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라고 하십니다.

 

꼭, 이 한 가지를 생각하십시오.

본문 38-39절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할 것이니라.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이 말씀은 사람들이 자기 소유와 권리를 지키려는 보수적 기질을 의미합니다. 마치 움직이는 공이나 물체가 계속 나아가려는 관성(慣性)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자기의 관습이나 자리를 지키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보다는 지금까지 해 오던 관습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예컨대, 옷이나 신발, 머리 스타일 등을 고집스럽게 늘 하던 편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도 새롭게 변화되는 것이나, 적극성을 띠기를 주저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하시면서, 조금 염려스러운 표현을 하셨습니다. ‘잘 숙성된 묵은 포도주의 맛을 아는 사람은 숙성되지 않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새로운 신앙보다, 지금까지 익숙해 있는 율법을 지키려 했습니다. 지금도 늘 하던 교회 생활에 익숙해져서 좀처럼 새로운 것이나, 열정적인 신앙으로의 변화를 싫어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를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2-3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자기만족을 위한 신앙생활’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신앙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 11:28)라며, 우리 모든 일의 주인이 되심을 선언하십니다. 이 일을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19절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우리의 영혼과 육신의 모든 필요를 아시며, 매일의 삶에서 공급하시는 분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즉, 매일 우리 마음이 향해야 할 방향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미래를 보는 사람은 지금 지금의 상황이나 생활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지금의 삶은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36-37절입니다.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 쓰게 되리라.” 예수께서는 ‘새로운 은혜를 위해서는 집착하고 있는 지나온 관습을 내려놓으라.’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미래가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새롭게 공급하시는 은혜를 원한다면, 내 마음의 방향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십시오. 내가 주님을 소망하며 손을 내밀면, 의심과 두려움으로 물속으로 빠져들던 베드로의 손을 잡아주신 주님께서 내 손도 잡아주십니다. 이렇게 옛 관습을 내려놓고 열정으로 새로운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께로 향하셔서 매일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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