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은혜 받을만한 때
*** 은혜 받을만한 때 / 고린도후서 6:1-10
고린도후서 6:1-10, “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3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 들어가는 말
어느 젊은 그리스도인이 자선 기관에서 일하다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왔습니다. 동료들이 그에게 갑자기 사직한 사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내 자신이 염려되어 나왔을 뿐입니다. 더 있다가는 뼈에 때가 묻겠기에, 피부에 때가 묻었을 때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되어 사직한 것입니다.”
때, 기회라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내가 원하는 때나 기회를 얻는다는 것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전도서 11:1-2절에서 기회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현대어 성경입니다. “네 음식을 물 위로 띄워 보내라.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는 그것에 네게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네 재물을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네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무슨 재난이 닥칠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음식이 필요한 사람이 있거든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넉넉히 나누어 주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기회가 있을 때 그 기회를 최대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미국 격언에도 ‘햇볕이 쨍쨍 났을 때 건초더미를 만들라.(Make hay while the sun shin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일이든지 그 일을 할 기회가 있다.’라는 뜻입니다. 좋은 기회가 찾아 왔을 때, 그 기회를 잘 선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세상일에서도 그러하지만, 영의 생명에 관한 일에는 더욱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일을 실속 없이 허송세월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본문 1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도 때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때와 기회를 어떻게 알고 잡을 수 있겠습니까?
※ 본문 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봅시다.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였습니다.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가르치며, 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편지에는 각 지역의 실정에 맞는 복음을 강론하면서 ‘세속의 삶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라’라고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특히, 고린도 교회가 있는 고린도 시는 잡다한 인종과 민족인 모여 사는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적 도시였습니다. 약 20만 명의 자유민이 있었고, 40만 명이 넘는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상업 도시였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향락이 극에 달했습니다. 예를 들면, 희랍에서는 최초로 로마의 검투사 경기를 수입했고, 아프로디테(비너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로 미와 사랑의 여신) 신전에는 수천 명의 매춘부가 있어서 음란의 도시였습니다. 이런 고린도 시를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 방문하여, 1년 6개월을 체류하면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러한 환경에 있는 고린도 교회는 당연히 신앙을 지킨다는 것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너무도 강력한 향락과 부를 추구하는 환경을 벗어나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책망하기도 하며, 위로도 하고, 하나님 나라에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지어야 한다는 상급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과 같이, 예수님을 따르는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열정을 가지라고 가르칩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받을만한 때를 알고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말씀을 대하는 우리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의 은총을 알고, 그 안에서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당면한 환경과 상황도 고린도 교회가 당면했던 것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 은혜 받을만한 때란, 무엇을 말합니까?
울산 동구의 현대자동차 공장이 들어서 있는 땅이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뻘밭이었고, 평당 몇백 원 정도였습니다. 만일 그곳에 그런 공장지대가 생길 줄 알았다면, 사람들이 그 땅을 사두지 않았겠습니까? 미국의 알래스카주는 1867년까지는 러시아의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가치가 없는 땅으로 여겨 720만 달러를 받고 미국에 팔았습니다. 처음에는 미국 의회도 ‘그 쓸모없는 땅을 720불이나 주고 살 필요가 없다.’라고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알래스카를 산 지 13년 만에, 무려 3억 달러가 넘는 황금이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더욱이 오늘에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엄청난 가치가 땅속에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알지 못하여,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720만 달러에 유혹되어 소중한 것을 스스로 버렸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앞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때와 기회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옛말에 “기회는 뒷머리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즉 기회는 지나가고 나면 잡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읽었던 전도서 11:1-2절의 말씀도 이처럼 소리 없이 지나가는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받을만한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 55:6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현대어 성경으로 봅시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만나러 오셨을 때에 너희도 주님을 만나러 나오너라. 주께서 가까이 와 계실 때에 너희도 주님을 부르며 찾아라.” 그리고 본문 2절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두 말씀에서 전하는 내용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기회’를 말씀합니다. 즉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는 것입니다. 이로 보아 때 즉 기회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말씀합니다. 전도서 3:1절에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께서도 요한복음 2:4절에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셨으며, 마태복음 8:29절에서는 가다라 지방의 귀신들린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역시 예수님도 그리고 마귀도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말씀합니다.
이러한 모든 기한과 때 중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중요한 때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본문 2절의 말씀처럼 내게 주어지는 ‘은혜의 때’와 ‘구원의 때’가 있습니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 때나 낚시를 하지 않습니다. 날씨를 살피고, 날짜와 시간을 계산해서 물때를 찾습니다. 그리고 바람과 조류와 장소까지 세심하게 살핍니다. 이는 아무 곳이나 아무 때에나 물고기가 잡히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가 먹이 활동을 하는 시간이나 장소, 환경을 잘 알아야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이사하는 날을 정하거나 결혼과 큰일을 치르는 때를 정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일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때를 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영원한 생명을 위한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때’입니다. 그리고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도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의 때’입니다. 본문 2절이 인용했던 이사야 49: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그리고 갈라디아서 4:4절에서는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정하신 때에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때를 연구하고 찾아야 하며,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망설이지 말고 잡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3:44-45절에서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비유’를 통하여 이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고 자신의 때를 알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 4:1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 말씀에서처럼 은혜의 보좌가 있습니다. 이 은혜의 보좌는 하나님의 관대함과 긍휼하심의 사랑이 작용하는 보좌입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자녀로 인정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기도로, 예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본문 3-10절까지는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실질적인 신앙의 삶을 보여줍니다. 즉,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당한 많은 고난의 현장은, 생활 속에서 순종의 삶으로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로 향하는 예배와 기도는 우리의 온 마음과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은혜받을만한 때는, 기도와 예배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때입니다.
지금, 세계의 정세를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십시오. 이렇게 환난과 어려운 환경이 닥칠 때는,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도 함께 주어집니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깨닫게 하시는 것은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나아가십시오. 순종하는 삶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가 부어집니다. 격변하는 시대를 사는 때에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하여,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삶에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